
이것은 사람의 말 6.9 작가선언
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모든 눈물은 똑같이 진하고 모든 피는 똑같이 붉고 모든 목숨은 똑같이 존엄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은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절대 다수 국민의 눈물과 피와 목숨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다. 본래 문학은 한계를 알지 못한다. 상대적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를
꿈꾼다. 어떤 사회 체제 안에서도 그 가두리를 답답해하면서 탈주와 월경을 꿈꾸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 본연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차라리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다급한 마음으로 1987년 6월을 떠올린다. 박종철의
죽음이 앞에 있었고 이한열의 죽음이 뒤에 있었다. 그 죽음들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힘겹게 그것을 가꿔왔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망각할 권리가 없다.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대한민국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의 정부인 작가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조직도, 집행부도, 정강도
없다.
우리는 특정한 이념에 기대어 발언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이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세운 ‘중도실용주의’라는 가짜 이념은 집권 1년도 못 돼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도처에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의 얼굴을 본다. 용산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와중에 여섯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도 이명박 정부는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여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지만 저들이 행한 일은 위선적인 사과와 광범위한 탄압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 장악을 기도했고 도심 광장과 사이버 광장에 차벽을 치고 철조망을 세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는 이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천박한 관료주의로 문화예술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사상 최악의 표적수사와 비열한 여론몰이는 그를 벼랑에서 투신하게 하였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매장되었다.
이 모든 일에 적극 가담한 정치검찰과 수구언론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린 종지기들로 고발한다.
살아있는 권력에는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는 군림하면서 영혼을 팔고 정의를 내던진 정치검찰들, 증오와 저주의 저널리즘으로 민주화의
역사를 모독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조롱하는 수구언론에 우리는 분노한다. 우리가 저들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혹해진다. 저들을 여전히 검찰과 언론이라고 불러야 하나. 곰팡이가 온 집을 뒤덮었다면 그것은 곰팡이가 슨 집이 아니라 집처럼
보이는 곰팡이일 뿐이다. 저 권력의 몸종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와 보편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달려온 이명박 정권
1년은 이토록 참담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서 우리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저들은 수치를 모르고 슬픔을
모른다. 수치와 슬픔을 아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됨이라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문학의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다.
이곳은 아우슈비츠다.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 이것은
과장인가? 그러나 문학은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과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종이와 펜이 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 저항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을 갈아엎고 있는 눈먼 불도저를 향해, 머리도 영혼도 심장도 없는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해야 하며 사람인 한 멈출 수 없는 그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우리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에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
우리는 모였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사람의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줄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수 있는 강물을.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
그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입을 엽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나는 교보에서 이 책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상하다... 난 이 제목의 책을 분명 읽었었는데...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는 제목의 어떤 책을
분명 아주 열심히 읽었었는데... 고개를 갸웃하면서.
공선옥 작가가 올해 1월부터 연재했다고 하니 이 책은 아닐 테고
생각이 날듯 말듯 하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동명 시를 검색하고서야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 속에서 하나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신. 이. 현.
나의 청춘은 얼마간(꽤 될 것이다), 이 작가에게 빚지고 있다.
이 이름을 떠올릴 때면, 이장혁의 <스무살>을 들을 때처럼
나 자신 곰팡이 핀 방 한 구석에 처박혀있는 것만 같지만
그녀로 인해 사막같은 한 시절을 견뎠고,
숨어있던 그 방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늘 나를 정작 가슴아프게 한 것은
신이현과 공선옥의 작품 모두에 영감을 준 시,
이바라기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작품이었다.
시인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했을 때,
(우리가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을 때)
열아홉 살이었다 한다.
이 시를 읽고 나자,
지금, 대한민국에서
'스무살'인
가장 어여쁜 청춘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해졌다.
미안하다,
네가 가장 예뻤을 때
이렇게 불행하고 얼빠지고 쓸쓸하게 해서.
나 역시, 가장 예뻤을 적에 그러했다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겠니.
그리고 될수록이면 오래 살자.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그 때의 가장 어여쁠 스무살들에게는
미안하지 않도록.
공선옥과 신이현의 작품을 읽어야겠다.
내 맘 같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접기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 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가 떠나가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으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 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블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時
내가 가장 예뻤을 때
茨木のり子
이바라기 노리코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まちはガラガラと壊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思いがけないどころから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青い空のようなものが見えたりした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周囲のひとだちがたくさん死んだ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工場で海で名もない島で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없는 섬에서
私はおしゃれのいとぐちを失ってしまった
나는 멋부릴 구실을 잃어버렸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だれもやさしいおくりものを下さらなかった
아무도 아름다운 선물을 주지 않았다
男たちは挙手の敬礼だけしか知らず
남자들은 거수 경례밖에 몰랐고
清潔なまなざしを残してみんなたって行った
깨끗한 눈빛을 남기고 모두 사라져 갔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わたしの頭は空っぽで
내 머리는 텅 빈 채였고
わたしのこころはにぶく
내 마음은 무디어
手足だけが栗色にかがやいた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わたしのくには戦争に負けた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そんなたわいないこともあるものかと
그런 어이없는 일도 있는걸까 하며
ブラウスの腕をましくあげて卑屈なまちをわたり歩いた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ラジオからはジャズが溢れていた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쳐 흘렀다
禁煙を破ったどきのようにめまいがした
담배를 다시 피웠을 때처럼 현기증이 났다
わたしは異国の音楽をやたらに楽んだ
나는 이국의 음악을 마음껏 즐겼다
わたしがいちばんきれいだったどき
내가 가장 예뻤을 때
わたしはもっとも不幸だった
나는 가장 불행했다
わたしはもっとも馬鹿であった
나는 가장 어리석었다
わたしはもっともさびしかった
나는 가장 쓸쓸했다
だから決心した 出来ることなら永く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한 한 오래
生きることを
살아야 한다고
年取ってから非常に美しい絵をかいだ
나이를 먹고나서야 몹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フランスのルオじいさんのように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 처럼
* 죠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 :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종교화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그의 예술이 본격적으로 확립된 시기는 50세 이후였다.
원문 :『일본名詩選』,김희보 편저, 종로서적, 1993
번역 : 자가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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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는 1926년에 태어난 일본의 시인으로, 일본이 패전했을 때 열 아홉살이었다. 그녀는 전후 일본
시단에서 여성시인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이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1990년에는
'한국현대시선'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2006년 2월, 79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결심은 실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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